파일 (F)
보기 (V)
도움말
도움말
사랑을 녹여 두었으니 휩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2019. 05. 01.

@cms_zzz 

 

 

 

 

 그 집에는 창문이 없다.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발끝부터 눈꺼풀 위까지 죄 낯선 감각이었다. 비이상적인 소체에 들어찬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법 오랜 시간 잠들었던 모양이다. 팔을 짚고 몸을 바로 세우자 온몸의 관절에서 모래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체내의 중심을 바로잡았다. 남푸른 머리카락 아래로 연한 청은색 톤의 머리카락이 몇 갈래 흘러내렸다.

 

 막 일어난 자리를 돌아보았다. 평범한 침대였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몹시 단순한 구조의 테이블, 의자, 수십 종류의 디퓨저와 향료가 차가운 유리병에 담겨 전시된 창, 조금 더 낮은 목제 협탁, 장식처럼 고정된 두어 개의 파이프 담배. 채도가 낮은 옅은 분홍색 투톤의 눈동자가 그 모든 것을 차근차근 훑을 무렵 벽에 물들어 없는 존재처럼 보였던 방문이 열렸다.

 

 “일어났군요.”

 

 목 안쪽의 것과 비슷한 청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나타났다. 차분하게 뻗은 본인의 머리칼을 몇 번 쓸어내려 정돈한 그는 방안의 잡다한 풍경을 둘러보는 대신 곧장 시선을 보내왔다. 그가 한 걸음 더 움직이자 이윽고 그의 몸이 전부 문틈으로 보였다. 보풀이 사납게 일어난 연녹색 카디건, 얼굴 아래를 부드럽게 감싼 흐물흐물한 흰색 목 니트, 주름을 펴는 둥 마는 둥 한 바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아침은 준비해두었습니다.”

 “응, 나가서 먹을게.”

 

 자연스러운 대답이 나온다. 매드해터가 나른하게 웃었다. 어딘지 피곤해 보이는 눈매였다.

 

 “그렇게 하죠, 루아.”

 루아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

 

 

 

 루아는 아무런 문제없이 식사를 마쳤다. 따끈한 에그베네딕트와 베어네이즈 소스, 아보카도 메쉬를 곁들인 차아바타, 갓 구운 베이컨과 파삭파삭한 식감의 샐러드. 맞은편에 앉은 매드해터의 손에는 군데군데 밴드가 감겨있었다. 비단 손뿐만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거즈가 있는 듯 했다.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그는 요리에 제법 능숙했다. 정작 본인 앞에는 알약 모양의 캡슐만 몇 개 놓아두고 찻잔에 따른 맹물과 삼켰다. 쌉싸름한 원두 가루가 주전자 아래로 가라앉았다. 루아의 빈 잔에 매드해터가 들고 온 커피를 따라주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둘은 부엌에서 벗어났다.

 

 “피곤해 보이네.”

 “그렇습니까.”

 

 거실은 잡동사니가 많았다. 매드해터는 널브러진 모든 것에 개의치 않으며 툭툭 발끝을 밀어 책장으로 향했다. 루아는 구태여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안개처럼 그 위를 흐르듯 빠져나왔다. 책장이 덜그럭거렸다. 광을 죽인 가죽 커버 양장본이 휘청거리다 손 안으로 들어간다.

 

 “……잠은 좀 자?”

 “충분히요.”

 “요카난.”

 

 지체 없이 내놓은 대답에 반듯한 부름이 돌아왔다. 말 그대로였다. 매드해터는 흡사 네모난 블럭 비슷한 물건이 부름을 형상화해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툭, 하고 팔이 떨어졌다.

 

 “제법 됐습니다. 당신이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어요.”

 

 날것의 음색이다. 루아가 물끄러미 시선을 옮기는 사이 매드해터는 책을 마저 뽑아서 소파 위로 갔다. 대개 배려는 무음으로 이루어진다. 루아는 눈가를 몇 번 움직일 뿐 별다른 소화 작용은 보이지 않았다. 심심한 반응이었다. 옆에 앉자 적당히 식은 체온이 닿지 않아도 전해져왔다. 책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어차피 우리는 죽는다 ―h.테드로이」

 

 어두운 녹색 표지에 푸른색 가름끈이 달린 책이었다. 저자 이름의 스펠링이 특이했다. 매드해터는 그녀의 곁에 앉아 규칙적으로 책장을 넘겼다. 혈색이 없었다. 인간은 생각함으로써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에 따라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침묵 속에서 종이는 형태의 말살을 이야기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대개 소멸에 근거해 성립된다. 소위 말하는 망각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본인의 존재를 환기시키고 남긴다. 죽은 사람은 그 행위를 할 수 없다. 사자死者를 둘러싼 환경은 조금씩 쇠퇴해간다. 처음에는 흔적이 남지만 영구하지 않다. 최종적으로는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는 타인의 기억이 되고 만다. 기억은 생각이므로 생각하는 주체와 유리되지 못한다. 즉 모든 관계를 근절할 경우, 종내에는 사자가 정말로 존재했었는지조차 개인의 판단에 의거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개인은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 입증해줄 타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두렵다. 그렇게 죽은 자는 사선을 넘어 침범한다. 생명은 증명을 잃는 순간 존재를 잃는다. 죽음이란, 그렇게 다가오는 법이다…….

 

 “……이제 좀 쉬어도 돼.”

 

 정적을 깨뜨리는 음성은 무게가 없고 다정했다. 무언가가 깨졌다.

 

 

 

*

 

 

 

 문을 열었더니 비가 내렸다. 문 앞의 광경을 그의 옆에서 마주친 여자는 말이 없었다. 열린 문틈으로 장대비가 빗발쳐 들어왔다. 발끝을 적시고 발목을 적신다. 차림새만 보아하면 계절감이 없는 행색이었으나 숨을 내쉴 때마다 희미한 입김이 나왔다. 못질된 문이 사납게 삐그덕거렸다. 차가운 빗물이 서리처럼 뼛속까지 스며들 즈음에야 매드해터는 공동묘지에서 시선을 돌렸다.

 

 어둡고 흐린 밤은 바닥을 보기에 적합하지 않다. 루아는 집 주변을 넓게 둘러싼 관들의 향연과 빗물 덮인 뚜껑 위로 희끄무레한 위광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말했다.

 

 “나였구나.”

 

 공동묘지가 아니다. 루아는 여태까지 한 번도 숨을 쉰 적이 없었다. 향조차 맡지 못했다. 관의 주인은 전부 같은 인물이다. 그것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뼈가 앙상한 손이 열어두었던 문고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들이닥친 빗물이 발치에 고여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엉성한 카디건은 허벅지 아래로 점차 늘어졌다. 무거워지기만 한다.

 

 “당신이 아닙니다.”

 

 무거워져만 갔다.

 

 “전부 실패작이에요.”

 

 루아는 지나치게 안온한 어조 뒤에 '이번에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죽이고 있는지 깨달았다. 손끝에 감은 밴드들 사이로 습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손톱이 들쑥날쑥했다. 그녀는 지나치게 그녀다웠다. 어지간히 눈치가 좋아서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추게 해주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구태여 꺼내지 않게 해주었다.

한참을 잊고 있었던 두통이 엄습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는가. 제법 아득한 일이었다. 더미를 만들어 일시적이나마 기척을 감춘들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마다 통증은 금세 날카로운 파편처럼 뇌리를 가르고 들쑤셨다. 지독했다. 이따금은 더 이상 살기 어렵다고 느껴질 만큼. 창백한 손끝이 점차 희게 질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루아가 손을 뻗어 늘어진 팔목을 잡았다. 맥박이 위태롭게 고동치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와.”

 

 짤막한 웃음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현관 안쪽까지 쏟아져 들어온 빗줄기는 이미 슬리퍼며 한참을 신지 않은 듯한 신발 몇 켤레를 차츰차츰 적셔가고 있었다. 일순 강한 악력이 어깨를 붙잡았다.

 

 “루아.”

 “…….”

 

 단번에 밀려난 몸이 현관 벽에 부딪혔다. 고개를 들자 일그러진 눈매가 있었다. 부딪힌 건 루아인데 본인이 더 괴로운 얼굴이다. 매드해터가 마지막 기억의 기점을 어디로 넣어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과거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당장 그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손에 머물던 물기가 직접적으로 어깨를 파고들었다. 빗소리는 여전히 컸다. 바깥이 한 번 번뜩이는 순간 시꺼멓게 침잠한 푸른 눈이 보였다. 머잖아 천둥소리가 울렸다.

 

 “차라리 몰랐으면…….”

 

 내가 찾는 당신은 당신이 아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욕망하지도 못한다. 이미 알아버린 것은 잊을 수 없었다. 마법은 세계의 부산물이자 모든 현상은 세계에 종속되어 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마법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그는 금단을 연구했다. 너무 잘 만들면 금방 눈치채버리고 말았다. 적당히 만들면 도무지 그 사람 같지가 않았다. 몇 번은 시체만 움직이다가 쓰러졌고 몇 번은 만들어둔 육신 자체가 녹아내렸다. 몇 번은 사고사로 죽었고 몇 번은 그녀가 스스로 죽었다. 매드해터는 그 모든 경험 이전에 존재했던 루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루아는 목이 멘 소리를 들었다. 여전히 빗물에 양 뺨이 젖어가는 중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샤펠리에의 상징인 청회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피로가 눅눅하게 가라앉은 눈매와 버석해진 입술. 유연하게 휘어지는 얇은 곡선. 폐인에 가까울 지경인 참상에도 그의 미모는 가히 아름다워서, 그토록 서글프게 웃는 얼굴은 생에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몇 번째일지 모를 루아가 생각했다.

 

 “……몰랐으면, 바라지도 않았을 겁니다.”

 

 턱 막힌 숨을 뚫고 기괴할 만큼 처연한 음색을 띤 웃음이 흘렀나왔다. 시야가 흐려졌다. 어깨가 가파르게 들썩였다. 이 세계에는 없다. 그러니 오지 않는다.

매드해터는 언제나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루아가 없는 자신이 얼마나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산정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리고 두통에 뒤척이며 수십 번의 밤을 새워가는 와중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휴식을 몰랐더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이 몸이 가졌던 온기를, 그 향기를, 겪어보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

 “자각은 있었습니다만…….”

 

 의존적이라는 건 충분히 자각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맹목적인 인간이었던가. 그는 결코 성정이 좋은 인간이 아니었다. 제대로 돼먹지도 못했다. 애초에 어디 하나 나사를 제대로 맞춰 자랄 구석도 없었다. 금기를 어기는 마법사를 세계는 방관하지 않았다. 살인 충동이 올라왔고 환청이 들렸다. 두통은 심해지기만 했다. 때때로 구역질이 났다. 점점 심해졌다. 거듭할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길들여진 뒤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셈이다. 원더랜드에서도 발길이 얼마나 끊어졌는지 세지 않았다. 종종 수면제를 전해 받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깨고 싶어도 깨어날 수 없을 거라고 진중한 경고를 받았으나 무시했다. 수면제를 먹으면 일어날 결과들을 선연하게 머릿속에 그리면서도 나서서 고통을 자처한 이유는 당장 눈을 뜨고 살아가는 현실이 이미 지옥도의 구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랬는데도 눈을 감으려고 하면 덜컥 겁이 났다. 눈앞의 사람은 그에게 이보다도 깊은 나락을 떠안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부터는 줄곧 그랬다. 당신이 내 삶의 전부예요, 급기야 그렇게 말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도무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드문드문, 갑자기.

 

 “쉬어도 된다니까.”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고 싶어졌다.

 

 “지쳤잖아.”

 

 매번 이런 식이었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세지 않기로 했다. 루아는 언제나 그를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파악해버리고 만다. 느릿한 손길이 목 언저리를 안았다. 티로 가린 흉터를 정확히 따라 움직인 손은 얼굴에 닿았다.

 

 귀에 익은 나지막한 목소리가 두통을 덮었다. 흐려진 시야를 체온 없는 손이 정리해주었다. 루아가 마른 턱 아래에 매인 것을 손등으로 닦아주었다. 어차피 우리는 죽는다. 몇 번째인지 슬슬 헷갈릴 때도 됐다. 내일이면 이 집에는 빈 묘비가 하나 늘어날 것이다. 머리에 남은 인물이 진짜 기억인지 아니면 광기가 빚어낸 상상인지 알 수도 없었다. 기댈 거라곤 오직 하나뿐이었다. 빗소리가 마른 등을 두들겼다.

 

 

 이 집은 관이다.